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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신을 차렸을 때인지 내 기억으로는
내 시야에서 먼저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‘문’이었다.
저 멀리 있는 문은 하얗고 밝게 빛을 내고 있었고 나를 반기고 있었다.
무의식적으로 저 문으로 발걸음이 향했고
그렇게 나는 내 앞에 놓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.
그렇게 하염없이 걸었다.
저 앞에 보이는 문만을 향해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고
또 다음 발걸음 옮겼다.
마치 내가 저 문으로 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.
문으로 향하는 이 길이 멀게만 느껴져도 언제 도착할지는 몰라도
언젠가는 내가 도착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.
그렇게 또 하염없이 걷고 지쳐 걷고 있었을 즈음
누군가 뒤에서 발목을 꽈악 잡아당기는 게 아닌가
내가 고개를 휙 돌려보니 나의 발목을 잡은 그 녀석은
온통 검은색 피부에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있었으며
마치 표면은 진흙 같기도 한 존재가 길 위에 쓰러진 채 손을 뻗은 채
나의 발목을 간신히 잡고 있었고
그 녀석은 무언가 말을 하는 듯 보였으나 말을 하지 못했다.
나는 질문이 들었다.
내가 가는 길을 왜 이 녀석은 막는 것이지?
나는 문으로 가야만 하는데?
그렇기에 나는 발목을 더 강하게 흔들고 뿌리쳐보았지만
그 녀석은 그럴수록 더욱더 강하게 손아귀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.
왜 이렇게까지 내가 가는 길을 막는 것이지?
왜 나를 방해하는 거지?
나는 앞으로 가야 한다고!
나는 그 녀석의 손을 반대발로 차고 밞기 시작했고 그러자
그 녀석은 절규하기 시작했다.
그 녀석의 몸이 진동을 일으키며 듯 진흙 같은 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.
그러자 손아귀의 힘이 점점 풀리며 내 발목을 놓아주기 시작했다.
하지만 나는 분노가 삭혀지지 않았다.
나의 앞길을 방해하고 나를 막아섰다는 단지 그 이유였지만
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었었다.
오랜 시간 동안 이 길을 걸어왔고 나는 저 문을 가야만 한다는 간절함을
그 녀석이 방해하고 막아선다는 느낌을 크게 받은 것 같다.
확신은 아니다. 그런 내가 걷는 이유는 오직 ‘문’이니까
그 길을 막아선 존재에게 나는 ‘분노’를 느낄 뿐이었다.
그렇기에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 나는 그 녀석에게 다가가
얼굴에 발길질을 마구 하기 시작했고
그 위에 올라가 주먹으로 흠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.
그러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자
나는 뒤섞인 호흡을 내뱉으며 주먹을 멈출 수 있었다.
그 녀석의 몸에서 일어나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길을 걸으려고 하자
그 녀석은 쓰러져있는 상태에서 한 번 더 나를 향해 뭉개진 팔을 뻗었다.
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휙 돌린 채
찝찝했지만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듯 문으로 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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